‘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은 디자인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이념 중 하나다. 디자인의 실용적 측면에 방점을 둔 이 말은 보통 제품이나 건축 디자인에 대입하면 딱 맞아 떨어지는 말이다. 하지만 ‘기능’을 ‘적용’으로 바꾼다면 브랜드 디자인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제품 디자인 못지 않게 브랜드 디자인에 있어 기능성과 적용성은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아무리 멋지고 근사한 브랜드 로고가 있어도 그 게 적용될 매체와 상황에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일이다.
예를 들어 식품회사의 로고는 같은 브랜드명을 가지고도 적용 대상에 따라 다른 형태와 색상을 가진 전혀 다른 로고를 쓰기도 한다. 참치로 유명한 동원산업이 좋은 예가 될 것 같다. 기업 브랜드와 제품 브랜드로 모두 Dongwon을 쓰고 있지만, 기업용으로 쓸 때와 제품에 쓰일 때는 디자인이 완전히 다르다.
왜 이렇게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쓰는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식품 패키지 디자인을 보면 금방 이해가 갈 것이다. 패키지 안에 넣어야할 정보와 이미지등의 요소들이 너무 많다. 제품명과 부제목도 들어가야하고 설명도 들어가야하고 이미지도 들어가야하며 중요한 브랜드 로고도 뺄 수 없다. 이러한 방해 요소들이 브랜드 로고의 존재를 가리게 된다. 그걸 보완하기 위해 많은 가공 식품 브랜드들이 브랜드명을 감싸안고 덩어리감 있게 변형한 디자인을 주로 쓰고 있다. 동원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동원 참치캔의 패키지를 보면 빨간색 테두리로 된 브랜드 로고가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동원처럼 테두리가 있는 문자형 로고는 아니지만 브랜드 로고 주변에 검은색 바탕의 사각 테두리를 만든 경우도 있다. 대상의 식품브랜드인 청정원이 그렇다. 검정 바탕과 로고의 대비는 주변의 요소들에 시선을 뺐기지 않으면서도, 각 요소간의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또한 브랜드 로고가 굉장히 작아져도 눈에 확연하게 띈다. 당연히 매대 위에서 패키지가 놓였을 때, 다른 브랜드들과의 노출 경쟁에서 유리한 지점을 선점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CJ 로고는 식품 패키지에 쓰기에치명적 단점을 가진다. 다색에 요소도 복잡해서 패키지 내에서의 적용성이 굉장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비비고나 백설같은 통합 브랜드의 파워를 점점 더 키워내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들 브랜드가 아예 CJ 로고를 대치해 버리는 것이다. 애초에 CJ 로고는 CJ그룹사가 거느리고 있는 다양한 산업군의 아이덴티티를 묶어내기 위한 디자인이었지, 식품분야만을 염두해 두고 만들어진 건 아닐 것이다. 당연히 식품 패키지에서의 적용성에 완벽히 부합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몇 년전 리뉴얼된 한국야쿠르트의 로고는 어떨까?
동원이나 청정원처럼 확실하게 독립적이진 않지만, 패키지 적용성이나 활용도에 있어서는 가장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형태로 보인다. 특히 야쿠르트의 경우 건강식품 브랜드의 덩치도 꽤 크기 때문에 식품 뿐 아니라 더 넓은 영역의 사업 카테고리를 묶어내는 역할을 해야했을 것이다. 현재 상태로 보면 제품 패키지들에 대체로 무난하게 잘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처럼 기업이나 브랜드 로고도 제품만큼이나 적용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예쁘고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만든 로고가 능사가 아닌 것이다. 로고도 결국 어딘가에 효과적으로 쓰일려고 만들어졌다. 어디에 어떻게 어떤 규칙으로 쓰일지가 더 중요한 것이다. 브랜드 로고 개발 전에 반드시 검토해야할 포인트이지만 이 지점을 놓치고 만들었다가 이 후에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처음부터 철저한 계획하에 체계적인 시스템을 염두해서 만들어져야한다.
바우하우스에서 강조했던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를 브랜딩 생태계의 용어로 바꿔보자면 ‘로고는 적용성을 따른다’ 정도가 아닐까 싶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만큼 기능까지 좋아야 제 몫을 하는 브랜드 로고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