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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넷플릭스에 빠졌다. 주방에서도 식탁에서도 아이패드를 놓지 않는다. 평소 티비도 잘 보지 않던 사람을 변하게 만든 건 십년도 넘은 미국 TV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 때문이다. 2000년 중반쯤 내가 다니던 직장에서도 한창 이슈가 됐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주인공역 이름인 ‘스코필드’를 한국팬들이 ‘석호필’이라는 애칭으로 붙였다는 기사를 보고 참 재밌다는 생각은 했지만 보진 않았다.

이렇게 유행이 한참 지난 미드를 보면서 빠져있는 아내를 보면서, 킹덤의 다음 시즌을 손꼽아 기다리는 나를 보면서,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서비스의 힘은 바로 이 ‘시리즈’물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기생충 같은 단편 영화는 미끼 상품일 뿐. 많은 구독자들이 보게 되는 대부분은 프리즈브레이크같은 시리즈물이다. 뭐 볼 게 없을까하고 무수한 콘텐츠의 숲을 헤메다 우연히 하나의 영상을 보게 되고, 도저히 끊을 수가 없어 늦은 새벽까지 보게되는 경험을 넷플릭스류의 구독 콘텐츠 사용자라면 누구나 경험해봤을 것이다. 이 다음은 과연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 때문에 정지 버튼 누르고 화장실도 뛰어갔다 올 정도로 몰입감을 주는 마력이 이런 시리즈물에는 있다.

하긴 예전 공중파 드라마가 영상 콘텐츠의 전부일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음편의 내용이 뭘까를 궁금하게 만들어 온가족을 주말에 티비 앞에 꽁꽁 묶어두던 주말, 수목드라마도 생각해보면 모두 시리즈라서 우리를 더 애타게하고 빠져들게 했다. 그때 잘 나가던 드라마들은 TV를 가지고 있는 가정 65% 시청자를 티비 앞으로 데려왔다. 지금 생각하면 있을수도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리즈의 힘은 영상 콘텐츠 뿐 아니라, 우리 주위의 다양한 방면에서 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광고나 홍보에 있어서도 시리즈는 중요하다. 배달의민족식의 B급 정서를 담은 광고 홍보물들이 단일 메시지와 단편적인 이미지로 끝났다면 과연 그런 파괴력 발휘했을까? 가령 ‘복날은 간다’라든지 ‘인생은 육식부터’같은 카피 시리즈나, 요즘 매체와 세대를 대표하는 가장 짧은 메시지 단위인 ‘ㅋ’, ‘헐’, ‘짱, ‘멋’ 그리고 ‘월, 화,수,목,금,토,일’등을 이용한 커뮤니케이션 방법 등은 재치있고 재미있었지만 한번으로 끝나서는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제품도 마찬가지다. ‘에어’ 시리즈로 유명한 나이키의 스니커즈 시리즈는 에어 조던, 에어 맥스, 에어 포스까지. 고객들이 어떤 걸 골라야할지 기분 좋은 고민에 빠지게 한다. 또한 각종 유명 아티스트와 브랜드와도 지속적인 콜라보레이션을 하거나 한정판으로 판매해 브랜드 충성도를 더 높이고 있다. 나이키가 주도하고 있는 스니커즈 한정판 시장은 2019년 2조 4천억에서 2025년에는 3배까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인기 비결은 공급을 한정해 의도적으인 희소가치를 만들어낸 것도 있지만, 나이키 신발류의 카테고리별 시리즈의 확장성이 넓고 탄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자동차에도 유명한 ‘시리즈’가 있다. 바로 BMW 시리즈다. 지금은 수입차 중 벤츠에 판매량이 크게 뒤져있는 상황이지만, 5년전만해도 벤츠의 E클래스 시리즈와 시장을 양분하고 있었던 자동차 모델 5시리즈가 있는 브랜드다. 시리즈라고 대놓고 자동차 라인업의 브랜드 카테고리 이름을 붙였는데 시리즈 앞에는 1,2,3,,,8으로 시작하는 숫자를 붙여 어떤 자동차 브랜드보다 쉽고 간결한 체계를 만들어냈다. 하나의 차 브랜드가 세단, 히치백, SUV,쿠페 등의 모든 형태와 그 안의 다양한 개별 시리즈를 보유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의 제조역량과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는 방증아닐까. 그러한 시리즈로 펼쳐진 차량의 스펙트럼은 고객들이 그 안에서 자신에게 맞는 차를 고르는 재미까지 제공한다.

시리즈물을 성공시키는 건 출판사들의 최종 꿈이라는 글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믿음사의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나 문학동네의 시집 시리즈가 인상이 깊었는데, 이 시리즈들이 책장에 꽂혀 있으면, 꼭 책을 다 읽지 않았더라도 저 안의 형형색색의 서사들이 내 방안에 가득 펼쳐질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출판사에서 독특한 형식의 시리즈물을 내놓고 있는데 가장 인상 깊은 시리지는 아무튼 시리즈다. 이 책은 위고, 제출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취향 에세이들이라고 하는데 ‘아무튼, 떡볶이’, ‘아무튼 식물’, ‘아무튼 비건’, ‘아무튼 문구’ 이런 식의 제목이다. 저자들의 개성도 묻어 나기도 하지만 ‘아무튼’이라는 키워드가 그냥 편하고 쉽게 다가가고자하는 정서를 하나로 잘 묶내고 있다. ‘아무튼’이 출판 브랜드의 시리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시리즈물도 빠질 수 없다. 반지의제왕, 헤리포터, 배트맨 시리즈 같은 영화들은 몇년을 기다리다,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시리즈라고 딱 잘라 말하기 뭣하지만 박찬욱 감독의 복수 시리즈는 개인적으로는 특히 기다려지고 기대되는 영화들이었다. 복수는 나의것으로 시작해 아가씨까지 이어지고 흐르는 특유의 정서는 우리 안의 어두운 내면을 세련되고 영화적으로 잘 묘사해내는 감각들이 특히 좋았다.

이것말고도 우리 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시리즈들은 정말 많다. 가을만되면 열광하는 한국 ‘시리즈’부터, 우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아비꼬의 카레 ‘시리즈’까지. 심지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어지는 시즌의 시리즈까지. 우리 생활 전반이,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시리즈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런 시리즈의 개념이 브랜드로 넘어 오면 브랜드의 언어는 풍성해지고 신뢰감과 완성도도 올라간다. 시리즈의 꾸준함과 일관성은 브랜드에 대한 믿음으로 바뀌고, 믿음이 가는 이야기를 전해 듣는 고객들은 안심되고 편안해진다.
결국 시리즈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흐름이 브랜드를 더 성장시키고 고객들이 브랜드의 팬이 되게 한다.

브랜드는 다시 팬을 만나 시리즈가 가진 이야기와 이미지 변주처럼 브랜드의 모습을 훨씬 더 풍성하고 다채롭게 만든다. 결국엔 이러한 길고 긴 흐름이 고객의 마음에까지 닿아 감동을 준다.

| 브랜딩 브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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