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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마무리해보면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관점이 생깁니다. 처음 운전을 할 땐 차문을 여는 순간부터가 긴장의 연속이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는 엑셀레이터와 브레이크가 헷갈리면 어쩌나하는 걱정으로 안절부절합니다. 주행을 시작하면 사이드 미러나 후방 카메라를 볼 여유도 없죠. 사방을 못보고 앞만 보고 달리게 됩니다. 동승한 사람들의 말은 들리지도 않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주차라는 최대의 난관을 맞이해야합니다. 차가 들어서는 각도를 계산하고 핸들을 돌리고 제자리에 맞추기 위해 넣었다 뺐다를 반복합니다. 겨우 겨우 주차선에 맞추고 마침내 모든 과정을 끝내고 나면 그야말로 기진맥진이죠.

그런데 이렇게 출발, 주행, 주차라는 이 험난한 과정을 혼자 힘으로 끝까지 하고 나면, 운전자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드라이버가 됩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 혼자서 해 본 경험은 그 다음 운전에 굉장한 자신감을 주죠. 처음과 끝을 직접 내 손과 발로 체득한 것들은 몸이 기억하게 되고 몸이 알아서 움직이게 합니다. 운전의 단계 단계마다 긴장하고 벌벌 떨면서 하던 게 금새 좋아집니다. 긴장을 덜하게 되면 운전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도 유연해집니다. 시도조차 두려웠던 차선 바꾸기 같은 고급 기술도 가능하게 됩니다. 새로운 시도들이 성공할 때마다 이 전보다는 훨씬 나은 운전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렇게 운전을 배우듯 일 할 때도 처음부터 끝까지 단계마다 몸으로 체득하고 머리가 기억할 수 있게 습득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운적석에 앉아 오로지 내 힘과 실력으로 상황을 헤쳐 나가다 보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시야가 열립니다. 덜 긴장하게 되니 보이지 않던 것들까지 보입니다. 잘못된 것도 금방 수정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건 각 단계마다 오로지 혼자의 힘으로 해봐야한다는 것입니다. 누구의 손과 머리를 빌리지 않고 부족하더라도 자신의 손과 머리로 해보는 게 핵심입니다. 모든 단계를 다 해냈는데 주차만 다른 사람에게 맡기거나, 고속도로 주행이 두려워 그 과정만 피하는 건 독립적인 운전자의 모습은 아닐 겁니다. 저는 이런 단독 운전의 훈련이 혼자 일하는 저 같은 일인 기업인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하지 않으려해도 피할 수 없이 경험해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독립된 객체로 일 전체의 모든 프로세스에 관여하고 진행해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브랜딩 업무를 마스터하는 과정도 운전을 배우는 과정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듭니다. 브랜딩 목표를 정하고 브리핑과 미팅을 하고, 브랜드 컨셉과 스토리, 브랜드 디자인 기획과 리서치 한 뒤 디자인 스케치 및 아이데이션을 하고, 프리젠테이션 준비를 합니다. 프리젠테이션 후에는 디자인 선정안을 발전 시키거나 보완하고 최종 디자인 컨셉을 선정하게 되죠. 그 이후에는 최종적으로 이제까지의 과정을 브랜드 가이드북에 담아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 해보면 그 전에 해왔던 진행 능력과는 차원이 달라진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각 단계별로 처음부터 완벽하게 혼자 해내기는 어렵습니다. 만능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입니다. 브랜딩 앞 단계에서는 유능한 브랜드 컨설턴트나 기획자가 함께하면 더 좋을 겁니다. 프리젠테이션할 때는 전문 프리젠터가 하면 훨씬 더 잘하겠죠. 디자인 부분도 브랜드의 성격에 더 맞는 디자이너가 하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부족하더라도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부대끼며 꾸역꾸역 끝내보면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내가 되는 걸 실감하게 됩니다. 시야의 폭도 한층 넓어지고 더 멀리 볼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브랜딩의 처음과 끝을 완벽하진 못하더라도 혼자서 직접 해 본 경험은 앞 서 설명드린 운전에서 출발과 주차까지 해본 경험과 비슷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차에 타는 순간, 목적지에 도착해 주차를 하는 상상까지 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브랜딩 뒷단의 디자인해야할 것들을 미리 상상해보면서 브랜드 전략을 짜고 기획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또 브랜드 디자인을 할 때는 앞부분에 세웠던 브랜드 전략과 스토리, 컨셉의 높은 이해도를 기반으로 밀도 있고 완성도 있는 디자인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프로젝트의 첫번째 단계를 시작하면서 마지막 단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희미한 안개 속에서 눈 앞에 보이는 장애물만을 넘다가, 안개 너머의 세상을 보면서 걸어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까요. 하나의 개별 단계도 벅찼던 게 전 과정을 떠안아도 만만해집니다. 첫 부분을 진행하더라도 끝 부분을 염두하게 되고, 완성을 생각하고 시작을 기획할 수 있게 됩니다. 완성 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 완성해갈 그림을 그려내기가 한층 수월해지는거죠.

이처럼 어떤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서 해 볼 수 있는 건, 일인 기업의 가장 큰 도전이자 성장의 동력이라는 생각이듭니다. 이는 제가 하고 있는 브랜딩에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닐겁니다. 어떤 분야든 어떤 일을 하던지 일의 처음부터 끝까지 경험해보는 게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혼자서도일잘하는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