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스마트 폰으로 타이핑을 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갔습니다. ‘이미 메타버스는 내 머리 속에 이식된 상태가 아닐까?’라구요. 저는 페이스북에서 타이핑을 할 때와 인스타그램에서 타이핑을 할 때 공간의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페이스북이 다소 회색빛 광장같은 공공의 장소같다면, 인스타그램은 보다 사적이고 때론 은밀하기도한 내 방같은 느낌을 줍니다. 당연히 페이스북에서는 하지 못할 말도 인스타그램에서는 친구들과 대화하듯 친밀한 단어들이 쉽게 튀어 나오죠. 연결이라는 가치를 표방한 비슷한 역할을 하는 SNS 공간인데 이렇게 그려내는 세계가 다릅니다.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도 같은 블로그지만 공간 안에 들어가 글을 쓰는 느낌은 완전 다르죠. 네이버 블로그의 무대가 대중성이 강한 음악방송 무대같다면, 브런치는 쇼미더머니나 슈퍼밴드같은 전문 장르 음악의 무대처럼 느껴집니다. 네이버 블로그에 발행하는 콘텐츠는 사람들이 더 원할 것같은 인기가 많을 것 같은 콘텐츠 위주로 쓸려고 했었다면, 브런치는 좀 더 개인적이고 내 고유의 생각을 더 쓰고 싶은 생각이 강해집니다. 인기보다는 내 주장과 속마음을 더 말하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하는 공간입니다.

이 것 뿐일까요. 이메일도 사내 메일 프로그램의 창을 열어 놓고 쓰는 기분과 네이버나 구글의 메일창을 열어 놓고 쓰는 기분은 또 다르죠. 글을 쓰는 톤도, 단어도 다르니 상대에게 느껴지는 전달되는 기분도 달라질 건 당연합니다.

MS 파워포인트와 Apple 키노트에서 만드는 기획서의 느낌은 또 어떻구요. 수백페이지의 지루한 보고서였던 파워포인트 파일을 키노트에서 열어 보기만해도 왠지 더 좋아 보입니다. 금방이라도 빽빽한 글자들이 모두 사라지고 스티브 잡스의 장표처럼 심플하고 임팩트한 페이지 앞에 서 있을 것만 같습니다.

메신저도 마찬가집니다. 카카오톡이라는 공간, 페이스북 메신저의 공간, 인스타그램의 DM의 공간이 또 다르죠. 같은 메신저인데 카카오톡은 어떤 이모티콘을 보낼까를 생각하는 반면 페이스북은 빠르고 길게 타이핑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인스타그램의 DM은 워낙 스팸 메시지가 많아서인지 차단을 먼저 생각하고 열어보는 경우가 많지만, 종이 비행기 모양의 아이콘에 빨간점이 생기고 아이콘을 터치해 그 공간으로 들어갈 때면 카카오톡이나 페메에서는 느끼지 못한 묘한 설렘이 있습니다.

이렇게 주로 글이라는 언어를 통해 소통하는 가상 공간들만해도 모두 다른 느낌의 유니버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타버스라면 떠오르는 3D의 게임그래픽이 하나 없는데 말이죠. 오히려 그런 구체성이 없으니 더욱 상상의 여지가 생기고 자연스러운 메타버스를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듭니다. 레고모양처럼 현실성 없고 완성도 떨어지는 그래픽 때문에 메타버스의 매력이 확 떨어지는 것보다는 말이죠.

이렇게 보면 메타버스 공간 느낌이 다른 게 아닙니다. 웹이나 모바일 창이라는 메타버스로 가는 관문을 열어 놓고 있을 때 일어나는 내 머리 속의 인식이니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미 싸이월드 때에도 MSN 메신저의 사람 모양 아이콘으로 채팅을 할 때도 머리 속에 현실이 아닌 가상 공간을 그려가는 경험을 했습니다.

앞으로 메타버스의 구현은 어떤 차원으로 일어나 지금보다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지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