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담은 한마디 ‘슬로건’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까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브랜드가 가진 본질과 정체성을 표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문장과 단어들로 꾸며내더라도, 정작 브랜드와 연관성이 없다면 그 구호는 공허할 뿐이죠. 그래서 좋은 슬로건들을 보면 브랜드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담겨 있습니다. 그에 더해, 브랜드의 철학과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성이 압축되어 표현된다면, 슬로건이 가져야 할 가장 기본적인 면모를 충족할 수 있겠습니다.
브랜드 슬로건을 생각할 때 많은 사람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나이키의 ‘Just do it’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냥 일단 해봐!’라고 승리를 위해서는 일단 뭐든 도전해보라는 실행 중심의 스포츠 정신을 담았습니다. ‘승리를 위한 도전’은 나이키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이자 추구하는 핵심 가치입니다. 처음에는 ‘뭘 해보라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지만, 잠깐의 부연 설명만 붙여도 슬로건이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우리는 금방 파악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그 메시지를 스토리로 만드는 영상과 광고들을 통해 부연 설명하게 되면 ‘Just do it’이 전달하는 의미는 훨씬 풍부해집니다. 도전을 통해 승리의 목표에 가까이 가기 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화면이나 광고들로, ‘Just do it’이라는 짧은 문구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변주가 가능합니다. 의미적으로는 브랜드의 정체성과 정신을 표현하면서도 그 외의 해석까지 가능한 확장성을 가집니다.
또한 구어체라서 메시지의 뉘앙스가 부드럽고 고객들에게 말을 건네듯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마치 좋은 친구가 독려하는 듯한 화법은 듣는 이의 머리를 움직이는 것을 넘어 우리의 심장을 움직이게 하죠. 그런데 사실 이렇게 ‘Just do it’처럼 브랜드의 정체성, 상징성, 간결함, 표현력까지 잘 갖춘 거의 완벽한 슬로건을 만드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는 걸 슬로건을 한 번이라도 만들어본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겁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국내 슬로건 중에는 GS칼텍스의 브랜드 슬로건인 ‘I’m your energy’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슬로건은 나이키의 ‘Just do it’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죠. ‘energy’라는 키워드로 에너지 가공과 주유소 브랜드를 운영하는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서의 정체성을 자연스럽게 담아냈습니다. 기업 브랜드를 ‘I’로 의인화한 표현은 기술 제조 기반 기업이라는 다소 차가운 이미지를 상쇄하고, 친근하고 사람 냄새 나는 따뜻한 기업이라는 느낌을 갖게 합니다. 말 한마디로 기업 이미지마저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꽤 오래된 슬로건이지만 지금도 GS주유소를 지날 때면 이 부드럽지만 강력한 문구가 머릿속에 떠오르곤 합니다.
‘Just do it’나 ‘I’m your energy’처럼 누가 봐도 좋은 인상적인 브랜드 슬로건을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쉽지 않은 이유들이 브랜드마다 있을 것입니다. 브랜드마다 하고 싶은 말도 다르고, 사업의 영역도 다르고, 내외부 환경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령 다양한 산업 분야를 영위하는 대기업 브랜드의 경우에는 ‘Just do it’과 같은 한정된 분야(스포츠)만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A Better Life, A Better World'(파나소닉)이나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현대자동차), ‘Life’s Good'(LG전자)와 같은 포괄적이고 추상적인 의미 중심의 슬로건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소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기업의 사정을 생각했을 때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IT 기반의 스타트업 브랜드들은 브랜드가 하는 일을 상당히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업 자체가 신생이고, 고객들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최대한 친절하고 쉽게 다가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런 표현이 주를 이룹니다. ‘금융의 모든 것, 토스에서 쉽고 간편하게'(토스)나 ‘차가 필요한 모든 순간'(쏘카)의 슬로건은 누가 봐도 모바일 기반 금융 서비스와 카셰어링 서비스로 인식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쉬운 표현들입니다.
새롭게 문을 여는 소규모의 브랜드들 또한 스타트업과 유사한 형태의 슬로건이 유리할 때가 많습니다. 저희 회사 BRIK에서 진행했던 난임 전문 병원인 서연아이여성의원의 ‘나와 아이의 인연이 시작되는 곳’, 윤슬독서논술의 ‘생각이 빛나는 아이로’는 슬로건 자체만 보고도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고객들이 바로 인식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브랜드명과도 연계하면서 이름의 뜻을 더 풍부하게 하고 있습니다. 대기업이 아닌 만큼 작은 홍보로도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런 곳에서 파나소닉이나 현대자동차가 내세운 거창한 의미의 슬로건을 내세운다면 어떨까요? 받아들이는 고객들도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브랜드도 체급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이 외에도 브랜드가 슬로건에 담고자 하는 강조점에 따라 슬로건의 방향성을 여러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게 정답이라기보다는 브랜드의 경영 환경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다 달라집니다.
먼저 ‘Just do it’(나이키), ‘A Better Life, A Better World’(파나소닉), ‘New Thinking. New Possibilities.’(현대자동차)은 브랜드의 정신과 철학적 가치를 중심으로 둡니다. 말의 무게감이 있고 의미도 깊게 다가옵니다.
반면에 ‘잘 아는, 잘하는’(LG CNS X 구글 클라우드 캠페인 브랜드 슬로건)은 브랜드의 상징성보다는 말맛의 재미와 캠페인다운 가볍고 친근한 접근을 시도합니다. 세계 최대의 클라우드 운영체계인 ‘구글 클라우드’를 그 어떤 IT 서비스(SI) 회사보다 최고로 잘 이해하고 더 완벽하게 운영한다는 의미에서 ‘잘’이라는 함축적인 표현을 썼습니다.
또한 ‘I’m your energy'(GS칼텍스) 슬로건의 경우에는 친근한 화법과 브랜드의 의인화를 통해 브랜드가 고객에게 주는 혜택과 역할을 친근하고 부드러운 감성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브랜드가 가진 차별적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안하고 선언하는 슬로건도 있죠. 에어비앤비의 슬로건은 여행과 숙박을 테마로 온라인 플랫폼을 운영하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잘 담아냈습니다. ‘살아보는 거야’라고 말하는 듯한 메시지는 브랜드가 가진 차별적 가치를 고객들에게 제안합니다. 여행이란 그저 여행지를 보고 느끼고 돌아다니는 걸 넘어 좀 더 현지의 느낌을 진하게 느껴볼 수 있다는 걸 ‘살아보는’ 것이라는 브랜드가 정의한 여행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새로운 생각과 제안은 고객들의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입니다. 호텔 같은 럭셔리한 느낌도 아니고 리조트처럼 거대한 느낌도 아니지만, 여행지를 가장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느낌을 주는 슬로건입니다.
이렇게 브랜드마다 사정이 있고, 그에 따라 다양한 슬로건의 방향이 나올 수 있습니다. 다양한 조건과 사례를 가진 슬로건을 살펴보면서 좋은 슬로건이란 무엇일까를 생각해봅니다.
✜ 슬로건의 표현에 있어서 –
간결하고 함축적인가?(간결성) 설명적이고 긴 문장보다는 서너 단어 정도의 짧고 간결하게 구성된 문장 형식이어야 합니다.
쉽고 이해할 수 있고 기억하기 좋은가?(전달성) 몇 마디만 덧붙여도 금방 이해할 수 있고 기억하기에도 부르기에도 좋은 표현이어야 합니다.
정보 전달을 넘어 감정적 연결을 일으키는가?(공감성)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뛸 만한 감정적 연결과 자극이 있는지도 생각해봅니다,
✜ 슬로건의 내용에 있어서 –
브랜드와 연관성이 있는가?(정체성) 브랜드의 본질을 담고 있으며 어떻게든 고객들이 브랜드와 연관된 연상을 할 수 있어야합니다.
브랜드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는가?(차별성) 경쟁사와 구별되는 브랜드만의 독특한 특징과 장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브랜드의 전체적인 이미지, 가치관, 전략과 일치한가? (일관성) 브랜드가 지닌 기존 전략적, 이미지적 자산들과 맥락이 연결되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사실 잘 만든 슬로건 하나로 브랜드 자체가 완전히 바뀔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호소력 있는 메시지 하나가 브랜드가 가진 인상을 다르게 하는 경우 또한 분명 있습니다. 나이키의 ‘Just do it’이 그랬고, 애플의 ‘Think Different’가 그랬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그 브랜드들이 그 구호가 단지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외쳐왔던 말들을 몸소 실천으로 옮겼던 노력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사람들의 믿음이 쌓이고, 감동하고 사랑받는 브랜드가 됐을 것입니다.
여러분 브랜드에는 ‘우리 브랜드의 가치를 담은 한마디’ 슬로건이 있으신가요? 그 구호가 거창한 비전을 담아도 좋고, 작고 사소한 바람을 담아도 좋고, 고객들에게 알렸으면 하는 소소한 이야기여도 좋습니다. 일단 그렇게 고객들에게 외치다 보면 그 말 그대로 실천하게 되는 브랜드가 될지 모를 일입니다. 그리고 그런 행동에 고객들은 반응할 것입니다. 어떤 생각을 계속 하다 보면 그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고, 계속 부르다 보면 그 부름이 현실로 돌아올 거라 생각합니다. 그게 브랜딩이라면 슬로건 하나 정도는 있어야 하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길고 어렵지 않을수록 오히려 좋습니다. 단 몇 마디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