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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개발 시 수도 없이 많은 옵션들 중 어떤 게 우리에게 필요한지, 더 오래갈지, 고객들에게 환영받을지를 직감적으로 느끼고 반응해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이걸 저는 ‘선택하는 감각’, 내지는 ‘선택의 감각’이라 정의합니다.

디자인을 하다보면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상황까지 선택의 순간을 수도 없이 마주칩니다. 어떤 컨셉이 좋을까부터, 어떤 분위기와 기분을 느끼게 해야하는지, 어떤 소재를 가지고 표현하고, 어떤 표현 방법을 사용해야하는지부터, 더 구체적으로는 어떤 형태, 어떤 질감, 어떤 색상을 선택할지부터 선택해야할 옵션들이 끝도 없이 나옵니다.

이렇게 보면 브랜드 디자인이라는 게 선택의 과정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죠. 브랜드라고 하는 주인공의 인격과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을 겪어야 하는 건 당연해 보입니다.

신입 디자이너 시절 참으로 어렵고 헷갈리던 이 선택의 문제에 직면해 당황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10여평 가까이되는 회의실 벽면을 모두 A4용지로 출력한 수백개의 디자인 안들을 보면서, 대학 강당을 가득 메운 디자인 시안 판넬 등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이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수많은 옵션 중 정답이 없는 게 이상하다.’

그러니 결국 이 프로젝트 과정에서 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많은 옵션들 중 가장 좋은 것들을 선별하는 것이고, 그 이유에 대한 논리와 합당함을 설명하는 일이라고요.

그럴려면 반드시 어떤 기준이 있어야하겠죠. 그런 결정의 순간에 판단했던 저만의 기준을 몇가지 말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의뢰인들에게 최종 디자인을 제안할 때, 과연 어떤 디자인이 브랜드가 성장하는 데 가장 도움이될지에 대한 판단을 위한 기준들입니다.

첫번째, 산업 적합성입니다.

예를 들어 카페는 카페스러움, 레스토랑은 레스토랑스러움, 의류브랜드는 의류브랜드스러움, 화장품에는 화장품스러움이 분명 있습니다. 모두 생활 밀착형 브랜드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분명 미묘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러한 특성을 알고 고객들이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야 합니다. 가령 간판과 매장 분위기를 보고 스시집인 줄 알았는데, 이탈리안 음식점이라면 얼마나 황당할까요? 어떤 브랜드는 그러한 의외성이 오히려 화제가되고 새롭게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고객에게 오해를 일으키는 브랜드가 되곤 합니다. 

두번째, 적용환경에 따른 적용성입니다.

산업 성장기 2차 제조산업이 중심이던 예전의 시대와 3차 산업, IT환경이 중심이된 현시대 환경에서의 브랜드 디자인은 시각적으로나 쓰임새로나 그 때와는 많이 달라야할 것입니다. 디자인의 접근도 당연히 현시대 적용 환경에 맞는 발상을 해야합니다. 더 나아가 10년 후의 변화에도 크게 어색하지 않게 적용할 수 있는 미래를 보는 디자인이어야하겠습니다.

세번째, 매력이 있어야합니다.

‘매력’이란 사실 정서와 오감을 모두 포괄하는 무척 애매한 말입니다. 하지만 뭔가 홀리게 하는 힘, 빠져들게 하는 힘이 브랜드에게 있다면 그 어떤 조건보다 큰 힘을 발휘하겠죠. 매력이 있어야 팬이 생기고, 팬들의 사랑으로 브랜드는 성장합니다. 물론 이 게 반드시 디자인만의 문제는 아닐겁니다.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에 이런 장치를 심을 수 있다면 브랜드를 운용하는데 굉장히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겠습니다.

넷째, 차별성입니다.

아무리 매력있고 적용성이 완벽하더라도,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새로워 보이지 않으면 선택받기 어렵습니다. 사실 근본적인 차별화를 위해서는 브랜드 컨셉 자체가 차별성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게 아니더라도 브랜드 디자인이 고유의 차별성과 독특함이 있다면 좋은 브랜드의 요건이 됩니다. 어떻게든 다른 메지시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한 조건입니다.

마지막으로 설립자와 내부 구성원들의 철학과 비전이 담겨야 합니다.

저는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의 원류는 인터널 브랜딩, 즉 브랜드 내부에서 나온다고 확신합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런 사람인 척, 좋은 상품이 아닌데 좋은 상품인 척하는 건 금방 들키기 마련이죠. 그렇지 않기 위해서 반드시 내부적으로 비전을 공유하고 브랜드 철학을 인식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과정과 마음들이 브랜드 디자인에도 보여지고 그 사실을 고객들이 인지한다면 브랜드의 호감은 상승할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좋은 브랜드 디자인’을 선택하는 기준 다섯가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물론 이 모든 조건을 갖춘 브랜드 디자인을 개발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겁니다. 처음부터 이런 완벽한 브랜드를 만들기보다는 점점 이런 수준의 브랜드가 되어가는 목표를 잡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다만 최소한의 기본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1,2번은 반드시 선택 전에 검토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브랜드의 내구성과 관련이 있기 때문인데요. 다른 디자인 분야와 다르게 브랜드 디자인은 최소 몇년부터 많게는 수십년까지도 쓰이기 때문입니다. 1,2번에서 탈락한 디자인은 브랜드 디자인이 하나의 ‘제품’이라고 했을 때, 제품의 기본인 ‘기능성’을 갖추지 못한 디자인입니다.

보통 이런 좋은 디자인을 선택하는 기준을 잡을 때,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트랜드’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게 좋은 디자인의 기준이 돼야하는가를 계속 의심해왔습니다. 트랜드를 파악하면 그 뿐이지, 그걸 따라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때문입니다. 트랜드를 만들어가는 사람은 현 시대 디자인을 생산해내는 모든 디자이너들이고, 그 디자이너들의 결과물이 ‘디자인 트랜드’입니다. 한국적인 디자인도 따로 있는 게 아니죠. 한국의 디자이너들이 하는 모든 디자인물이 결국 한국적인 디자인입니다. 그런데 왜 트랜드를 쫓아 디자인해야 하는지, 한국적인 걸 추구해야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쫓아야할 건 오직 하나. ‘트랜드’가 아니라, ‘브랜드를 생각하는 고객의 마음’입니다.

위 기준 이 외에도 사실 고려할 것들은 넘쳐납니다. 주목성, 가독성, 기억의 용이성, 회상력, 영속성, 조형성, 역사성 등 등 어느 하나 가볍게 넘어갈 것들이 없습니다. 디자이너들은 이런 이성적 기준들을 머리 속에 넣고, 감성적이고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가야합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디자이너는 그 어떤 직무보다 ‘선택’에 민감한 분야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좋은 디자이너는 ‘선택’을 위해 ‘좋은 감각’을 유지해야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보면 좋은 타자와의 조건과도 비슷합니다. 좋은 타격은 잘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은 ‘이 공이 좋은 공인지, 칠만한 공인지’를 판단해내는 탁월한 선구안입니다. 그리고 그런 감각은 타고나기도 하지만, 수 많은 공들을 마주해보고 쳐보면서 얻어낼 수 있는 경험의 산물이도 합니다.

| 브랜딩브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