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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일인기업의 출발이 그렇듯 처음부터 혼자서 계속 일하려고 마음먹고 출발한 경우는 많이 없을 것입니다. 사업 초기 자본이 부족해서, 여력이 안돼서, 일이 있을지 몰라서 혼자서 시작하게 돼죠. 저 역시 그랬습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 매출과 일의 수주에 안정기가 접어드는 시점이 되자 고민이 시작되더군요. 채용할만한 여력은 생겼는데,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혼자서 갈지 아니면 함께할 분을 찾아야 하는지를요.

그러다 드는 생각이 상시 직원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있을 때마다 함께 할 수 있는 파트너들을 모아 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서 일하는 게 제 스스로 만족감이 상당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유지하면서 가고 싶었거든요.

사업하는 분들의 가장 큰 고민이 고용과 인력의 운용이라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쓸 에너지를 조금 떼어서 차라리 우리 회사에 꼭 필요한 분들과의 커넥션늘 만드는 일에 쓰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는 분들을 선택해 그때 그때 유연하게 인력을 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도 하구요. 그런 생각으로 많이 기울자 그때부터는 각종 플랫폼이나 SNS에서 눈에 띄는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 캘리그라퍼, 기획자, 마케터 등 각 분야의 창작자들을 눈여겨 봐두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일하듯이 시간을 내서 파트너로 모시고 싶은 분들을 리서치하고 관련 자료들의 리스트를 모아 놓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1년 정도 지켜보고나 관계를 맺어 온 분들이 현재 디자인 파트너 다섯분, 기획 및 마케터 두분, 네이미스트 세분입니다. 각각의 영역에서 저처럼 혼자 일하는 이분들과 파트너쉽을 맺고 있습니다. 서로의 심정과 처지를 더 잘 알기 때문에 한층 더 빠르게 가까워진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이 생길 때마다 매번 함께할 수는 없지만, 일의 성격에 맞는 일이 생겼을 땐 망설임없이 연락을 하는 편입니다. 때론 한명과 할때도 있고 좀 더 큰 프로젝트가 생기면 두세명과 팀을 이뤄 일하기도 합니다.

사실 처음에는 일을 넘긴다는 생각으로 했는데, 다 넘어가기가 쉽지는 않더군요. 내가 하는 일의 양이 획기적으로 줄지는 않았습니다. 좋은 결과를 위해서는 처음부터 프로젝트를 세세하게 브리핑하고 파트너들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깊이있는 커뮤니케이션을 이뤄내야하고 여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들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렇게 하더라도 서로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고 오해할 때도 많죠. 신경 쓰지 않으면 너무 다른 결과물로 서로가 당황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시간이 들어가는 일이므로 혼자 해결할 때보다 오히려 더 늘어날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 좋은 점은 혼자 해결해야하는 심적 부담감은 확실히 줄어들고,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파트너들에게 브리핑이 끝나면 각자가 알아서 다른 아이디어의 씨앗을 심고 키워가는데 이 시간을 기다리 게 무엇보다 즐겁고 기대됩니다. 기한이 되어 거둬들인 아이디어는 제가 모아서 선별합니다. 가장 좋을 것 같고 프로젝트의 성향에 맞는 아이디어들만 선별하고 재가공합니다. 아무래도 고객과 직접 소통하는 제가 프로젝트의 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다른 파트너도 그럴 수 있다면 앞으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넘길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런 정도의 팀 구성은 아닙니다.

그렇게 정리된 다양한 아이디어들을 정리하고 가공해 최종적으로 고객사에 보고합니다.

사실 아직까지는 팀을 만들고 운용하는 비용과 시간에 비해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희망적인 건 협업의 횟수가 늘어날수록 점점 손발이 맞는 팀으로서의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는 겁니다. 각자가 혼자 일하고 멀리 떨어져 았지만, 같은 마음으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대부분이 직접 만나 본 적이 없는 팀인데 그런 정서적 유대감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기도 합니다.

이미 기업에서는 테스크포스(TF) 형식으로 협업하는 게 익숙한 방식이죠. 정규 조직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길 때 어김없이 만들어지는 팀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이 방식이 일인기업들에서도 도입해야할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습니다. 한 분야 안에서조차 전문성이 존재하는 시대니까요.

저는 이렇게 일하는 방식이 미래의 일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프로젝트의 성격에 맞는 일인기업의 전문가들이 모여 더 나은 결과를 만들어내고 다시 각자의 길로 흩어지는 거죠. 영화 하나를 찍기 위해 새로운 제작팀, 연출팀, 촬영팀, 조명팀, 예술팀, 음향팀이 꾸려지듯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거기에 딱맞는 일인 기업들이 모이는 방식입니다.

영화팀에서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아직 혼자서 일하는 사람들간에는 익숙하지 않죠. 저는 이 부분의 장점을 일인기업들에게 적용하기 위해 실험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일인기업이 가진 재능과 전문성의 조각들을 선별하고 맞추고 조립해가는 역할하면서 더 진화된 일인기업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