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와 기업의 디자인 컨셉을 논의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있다. 바로 바로 ‘고급’이다.
고급이라는 명사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첫번째, ‘물건이나 시설 따위의 품질이 뛰어나고 값이 비쌈’을 뜻한다. 두번째, ‘지위나 신분 또는 수준 따위가 높음’을 뜻한다. 그런데 이 단순한 뜻이 디자인으로 넘어오면 물건이나 지위에 붙는 용어가 아니라, 이미지에 붙어 애매하고 실체도 없는 희한한 단어가 되어 버린다.
‘ 고급스럽게 해주세요 ‘
디자인 의뢰를 받으면서 이 말 처럼 자주 듣는 말도 없지만, 이 말만큼 어려운 말도 없을 것이다. 고급스럽게 보이고 싶지 않는 브랜드가 과연 있을까? 물론 상품과 서비스의 특성을 고려해 일부러 키치적인 분위기를 만들거나, 삼류 이미지로 포지셔닝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그런 사례 또한 다른 브랜드와의 차별성 확립을 위한 고급화 전략의 일환이기도 하다. 어쨌든 대부분의 브랜드들은 자신들이 위치한 시장 카테고리 안에서 어떻게든 급이 다른 ‘고급’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이 ‘고급’이라는 키워드를 말할 때 대부분은 이 고급이 ‘어떤’ 고급인지에 대해서는 쏙 빼고 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고급은 고급인데, 어떤 고급을 말하는 건지, 어떻게 우리가 추구하는 고급을 지향해 갈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있는거다. 그냥 고급스럽게 해주세요.라는 말은 의뢰하는 입장에서도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도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렵고 도움도 주지 못한다.
그러면 이 경우 어떻게 해야할까? 조금 막막하더라도 ‘고급’을 더 묘사해 줄 수식어를 곰곰히 생각해 적어보면 어떨까? 우리만의 ‘고급’을 추상적인 단어에 머물지 않고 더 자세히 정의 내려보는 것이다. 그렇게 햐서 고급 앞에 붙을 ‘어떤’이라는 수식어는 어쩌면 우리 브랜드를 설명해줄 결정적 키워드가 되기도 할 것이다.
고급을 추구하는 어떤 화장품 브랜드가 있다고 가정 해보자.
‘ 우리의 고급이란 ‘실천하는 아름다움’입니다.
그걸 증명하기 위해 운동을 하고, 식단을 관리하고, 정서적 안정을 위해 노력하는 고객들을 돕습니다. ‘ 이렇게 고급을 정의하면 ‘아름다움의 실천으로써의 고급 화장품 브랜드’라는 정의가 내려진다. 그저 막연한 고급이 아니라, 뻔한 아름다움이 아니라, 브랜드가 추구하는 고급의 지향점이 쉽게 그려지게 된다.
한과 기반의 과자브랜드가 있다고 해보자. 이 브랜드의 고급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자. ‘ 우리가 생각하는 고급이란 전통의 틀을 벗어나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한과를 만드는 과정과 재료는 전통을 유지하면서 시대감각에 맞는 새로운 차원의 맛을 내 놓는 거죠. 이 게 우리를 급이 다른 과자 브랜드로 만들 것입니다.’ 그냥 고급 한과 과자브랜드를 넘어 그 브랜드가 지향해갈 고급의 지향점이 어느 정도는 손에 잡힐 것 같다.
위의 화장품 브랜드의 고급에는 ‘실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더 명확해졌고, 한과 과자브랜드는 ‘틀을 벗어난’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 컨셉의 지향점이 더 뚜렷해졌다. 이런 식의 수식과 묘사를 통해 우리 브랜드만의 고급을 정의내리면 디자인의 방향도 훨씬 선명해져 프로젝트의 진행 속도도 빨라지고 서로 간에 많은 힘을 빼지 않아도 된다.
우리나라 산을 높이에 따라 줄 세우면 백두산, 한라산, 금강산 순이다. 하지만 높낮이가 아니라, 산이 주는 주관적 아름다움과 혜택으로 높이를 측정하면 어떨까? 아마도 세개의 산 우리에게 보여지는 고급감이 각기 달라, 비슷한 높이로 솟아 있을 것이다. 높낮이로 순위를 가리기는 어려울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동네 뒷산의 봉우리가 우리 가슴 속의 최고급에 자리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브랜드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격과 전통에 따라 급의 높이가 천차만별인 브랜드들 사이에서 돋보이기 위해서는 단지 높이만으로 승부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지향하는 ‘높은 급’이란 무엇인지, 그 곳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갖고 접근해야하는지 먼저 정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고급’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높이의 전략적 사고’를 해야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