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모든 기업들이 혁신을 외칠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 제조 산업의 고도화되고 절정에 닿을 시기인 2010년 초반이었던 것 같습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이겨내고 반도체 생산률이 처음 일본을 넘어섰고 디스플레이 생산량은 전세계에서 독보적일 때였죠. 우리나라 대기업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글로벌 기업들도 혁신이라는 말을 빼면 경영을 말하기 어려웠던 시기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조산업의 발전이 한계에 다다르고 IT산업들이 빠르게 진입해 시장을 장악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급변하는 흐름 속에서 혁신이라는 키워드는 생사를 가르는 절규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제조기업들이 우려하던 상황은 벌어졌고, 산업의 권력은 이미 판교로 넘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생각해보면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IT기업들이 혁신을 외칠 때는 없었습니다. 구글이나 애플은 말할 것도 없구요. 태생 자체가 시대의 혁신이었으니까요. 이미 자신들의 플랫폼이 시대를 앞서 가는 선도성을 가졌으니, 굳이 스스로 혁신이라는 단어를 말하지도 않도 내세울 명분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정우성같은 시대의 초미남이 스스로 잘 생겼다고 외치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나.
그에 비해 제조 기업들을 뭔가 변화를 해야하는데, 성장의 한계는 느낄 수 밖에 없죠. 초격차라는 속도 전이 아니면 극복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었을 겁니다. 엄청난 시간의 격차로 승부하거나 엄두가 안날 규모로 승부해야했습니다. 공장 설비를 대규모로 늘리고 인력을 충원해야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혁신’이라는 구호는 만병통치약이 아니욨을까요? 원래의 시간을 초월하고 덩치를 키울려면, 혁신의 본 뜻처럼 가죽을 새롭게 갈아입을 각오를 해야했습니다. 이런 명제가 기업을 이끄는 주체들에게는 상당히 공감가는 얻었던 키워드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들에게 혁신이라는 말은, 그 아젠다를 통해 자신들의 불명확한 미래를 퉁치려는 시도로 보이기도 했습니다. 의도는 알겠는데, 뭘 어떻게 바꿔가야할지는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았죠. 그러다보니 혁신적 생산성보다는 혁신을 위해 노동력을 갈아 넣는 구조로 변했고, 노동의 강도와 시간은 점점 더 세졌습니다.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 새로운 구조와 기술을 도입하기보다는 사람이라는 자원을 대량 투입하는 쪽으로 방향이 잡혀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산업 고도화 시대의 키워드였던 ‘혁신’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걸 체감합니다. 최근의 이슈들을 보면 혁신이라는 기업의 태도와 정신이 아니라 AI,메타버스, 블록체인, NFT 등 실체가 있는 기술적 변화상들을 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술적 개념들은 이미 혁신이는 가치를 담고 있는 단어들이기 때문에 혁신을 외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에게 혁신은 더이상 새롭거나 힙하거나 섹시한 단어가 더 이상 아닙니다. 물론 혁신의 정신으로 큰 성과를 올려 온 것도 사실이지만, 정신적 육체적 노동 강도를 올리고 많은 부작용까지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혁신의 시대 다음은 뭘까요? 최근 BTS와 오징어 게임등의 문화 산업들의 융기를 보면서 저는 ‘융성’이라는 키워드가 떠올랐습니다.
이제는 갈아 엎거나, 갈아 입는 시대가 아니라, 솟아 오르는 시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없던 걸 짠하고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여기 저기 실력과 경험이 쌓인 객체들이 솟아 오르고 있습니다.
인간의 기본 생존권을 찾기 위해 싸우고 쟁취했던 혁명의 시대와 피로 이뤄낸 혈명의 시대에서 신업의 혁신으로 이뤄낸 첨단 시대를 지나 이제는 개별 주체가 문화를 융성시키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그들은 제주의 오름처럼 여기저기서 솟아 올라 어울리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시대에는 당연히 산업보다는 문화의 대결이 되겠죠. 각자의 문화에 담긴 이야기와 특징들이 매력있어야 경쟁력이 생길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즐기는 형태와 취향의 다양성이 꽃을 피우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혁명의 시대에는 다 함께 단결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죽을 듯이 달려들었다면, 혁신의 시대에는 표준화와 효율성이 강조된 공장 시스템처럼 사회와 기업이 돌아갔죠. 하지만 곧 다가올 미래에는 융기의 시대가 되지 않을까요? 개인들의 힘이 더욱 세지고 개별의 가치가 더욱 존중받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융기되는 개별성들이 융화되고 융합해 결국에는 융성한 문화와 인류의 번영의 시대를 열어가는 게 우리가 살아갈 미래 사회의 모습이여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개인의 실력과 개별의 매력을 키우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개인들이 하나의 완성체로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방향으로 나아가야합니다. 수많은 다양한 세계관을 가진 개인들이 어울려 우주와 같은 지구를 만들어야합니다.
각 개인이 곧 하나의 유니버스니 이 게 메타버스로 바껴도 전혀 어려울 것도 이상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 개인들은 결국 모두의 세상을 사는 게 아니라, 나의 세상을 살아 가며 이러한 융기와 융합과 융성의 시대를 만들어 가야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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