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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용품 중 가장 아껴쓰는 제품이 있습니다. 바로 화장품 브랜드 이솝(Aesop)의 핸드워시입니다. 집에서 매일 매일 편하게 손 씻는데 쓰려고 사기엔 부담스러웠는데, 마침 선물로 받아 잘 쓰고 있습니다. 첫 사용감부터 은은하고 자연스러운 향이 올라와 기분이 좋았는데, 씻고 나서도 손을 건조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 더욱 만족스러웠습니다. 1987년 호주에서 시작한 이 브랜드는 아버지의 미용실을 오가다가 미용사가 된 창립자가 만든 화장품 브랜드라고 합니다. 고객의 머리를 섬세하고 꼼꼼히 만지던 그의 손길이 브랜드의 접점마다 잘 닿아있는 듯 합니다.

이전까진 한번도 이솝을 구입하거나 써보진 않았지만 익히 알고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화장품 브랜딩을 진행할 때면 반드시 거론되는 브랜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패키지 디자인의 인상이 독보적인 아우라를 풍기고 있기 때문일겁니다.

그런 인기만큼이나 이솝의 디자인을 그래도 따라하는 아류작들도 많이 나왔습니다. 이름을 알만한 기업까지 이솝의 디자인 문법을 그대로 따르는 걸 보니 한숨이 나오더군요. 브랜딩이란 게 패키지 디자인 하나 따라한다고 금방 그 브랜드의 수준으로 올라서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따라한다고 브랜드에 어떤 도움을 줄지 의심이 갑니다. 누가봐도 이솝의 미투 브랜드 정도로 보이는 그 따라쟁이 브랜드는 예상대로 얼마 못 가서 조용하고 존재감없이 사라지거나 그저 그런 브랜드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솝의 패키지 디자인을 겉모습만 따라하니 그런 일이 발생을 하는 거겠죠. 제가 생각할 때 이솝 패키지 디자인의 매력은 바로 대비(Contrast)입니다. 이건 단순히 시각적인 매력이 아니라, 이솝이 추구하는 가치에서 나오는 건데요. 예를들면 이런 겁니다. 이솝은 자연에서 얻은 굉장히 좋은 원료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대조적으로 패키지 디자인의 인상은 자연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죠. 글자로 빼곡한 라벨을 보면 굉장히 딱딱하고 이성적인 느낌의 시각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연의 재료에서 가져온 재료와는 대비되는 이미지입니다.

또한 이렇게 패키지디자인이 정보의 개념과 이성적 이미지를 글자에 담아냈다면, 매장의 공간디자인은 포근하면서도 우아한 자연의 분위기가 있습니다. 언뜻 상충되어 보이는 두개의 이미지가 보완되면서 묘한 긴장감과 풍부함 감성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이솝 패키지 디자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고객들은 과연 글자로 꽉채워진 이솝의 패키지를 보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요? 제가 소비자 입장에서 본 이솝의 패키지의 느낌은 이렇습니다. 

‘ 이 제품은 뭔가 이야기가 있구나, 그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궁금한데?’

‘ 자신들을 숨기거나 포장하지 않는구나, 이렇게나 친절하고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는 걸 보니’

‘ 뭔가 연구를 많이 하나보구나’ 이렇게나 할말이 많을 걸 보니’

글자들이 패키지의 전면에 있다보니 이런 설명과 이야기가 담겼다는 인상이 강합니다. 화장품과 피부에 대한 연구 논문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해서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갑니다. 글자가 빼곡하게 들어앉은 책의 한 페이지를 볼 때의 안정감 같은 게 느껴집니다. 만약 특정 이미지를 구체화해 강조됐다면 의미가 한정적이었겠지만, 문자가 중심이되니 해석의 여지가 더 넓고 확장해서 읽힙니다. 금방 질리지 않고 볼때마다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오는 장점도 있습니다. 이렇게 불필요한 이미지 하나없이 딱 필요한 정보와 글자로만 이루어진 디자인은 브랜드가 가진 본질에 대한 탐구 정신과 기본을 지키기 위한 집념이 느껴집니다. 역량의 80%이상을 제품 개발에 투자하고 평균 개발기간이 3~4년 걸린다고하는 브랜드의 실천적 철학을 잘 녹여낸 디자인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이렇게 글자로만 채워진 화장품 패키지는 이솝말고도 많습니다. 특히나 메디컬한 컨셉의 기능성 화장품 브랜드에는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런 류의 화장품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키엘도 그 중 하나입니다. 약국으로 시작한 브랜드답게 메디컬한 요소들을 강조한 패키지 디자인으로 타 브랜드와도 확실한 차별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이솝과 키엘 이 두가지 브랜드는 글자만으로 가득 채워진 시각 언어를 사용한 패키지 디자인을 사용하고 있지만 둘의 분위기는 사뭇 다릅니다.

우선 이미지의 인상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건 색상인데요. 이솝은 검정과 갈색, 미색이 바탕색이 적절한 비율로 적용되어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특히 용기의 진한 갈색은 대지와 나무 등의 자연의 톤을 연상시킵니다. 건강하고 안정감 있는 느낌을 줍니다.

그에 비해 키엘의 경우는 창백할 정도로 완벽한 백색입니다. 불순물이 하나없는 순도 100%의 눈같은 이미지는 불필요한 재료가 들어가진 않는 제품의 투명성과 순수성을 말하는 듯합니다. 실제로 키엘의 수분크림은 향마저도 없는 ‘0’의 순수함을 느끼게 하는 제품입니다.

서체도 다르죠. 브랜드 로고 뿐 아니라, 본문의 서체가 고딕인 이솝은 현대적이고 트렌디한 이미지를 줍니다. 반면 키엘은 100년이 넘은 역사성을 느낄 수 있는 클래식한 느낌의 명조계열 서체를 사용합니다. 글자로만  이루어진 디자인의 특성상 글자의 자형이 주는 이미지의 차이는 상당히 큽니다.

언뜻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두 브랜드의 패키지 이미지가 이렇게 다른데요. 개인적으로는 이솝(Aesop)의 패키지 디자인에 더 많은 디테일이 보여 흥미롭고 눈길이 갔습니다. 

 

 

 

첫번째는 라벨의 외곽과 검정색 블럭의 라운딩 형태입니다. 미세하게 돌아간 이 곡선이 날카로워 베일 것 같은 의학품의 이미지를 보완해 좀 더 코스메틱 브랜드로 보이게 합니다. 미세하지만 섬세한 손길로 부드럽게 감싸는 듯한 이미지를 줍니다. 

두번째는 은은하게 깔린 미색의 바탕색입니다. 바탕색이 미색이 아니라 키엘처럼 완벽한 백색이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차갑고 냉정하게 보였을 것입니다. 

세번째는 정중앙의 정렬이 아니라, 브랜드 로고가 왼쪽에 위치한 좌우 비대칭의 레이아웃입니다. 이 방식은 용기 적용 시 정중앙을 피하기 어려운 화장품 패키지 디자인의 일반적인 어법을 깨트린 신선한 방식입니다. 

이렇게 세가지가 제가 발견한 이솝 패키지 디자인의 디테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디테일이 브랜드가 지향하는 가치와 태도를 대변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고객에게 진정성 있게 보여주고, 편안하고 건강한 사용감을 주기 위한 브랜드의 숨은 노력이 엿보이는 듯 했습니다.

그러면서 디자인이 곧 품질이라는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격언이 떠올랐습니다. 글자로 빼곡하게 채워진 패키지 디자인은 그 자체로 상징이 됩니다. 고객들은 굳이 브랜드의 심벌마크나 로고가 없어도 패키지 자체로 브랜드 이미지로 인식합니다. 패키지의 일부만 봐도 그 브랜드가 연상되는 장점도 가집니다. 

이솝, 키엘 패키지가 우리에게 말을 겁니다. 우리 브랜드는 어떤 제품이고, 어떤 생각에서 이 제품을 만들었는지 말합니다. 고객이 생각하는 피부에 대한 고민을 들어주고, 거기에 대한 친절하고 상세한 해설을 해주는 듯 합니다. 이렇게 나를 이해하고 소통한다는 정서적 유대감을 준다는 느낌은 화장품 브랜드에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글자로만 빼곡하게 채워진 패키지 디자인의 장점은 이렇게 디자인 스스로가 브랜드의 스토리텔러가 되어 브랜드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스토리를 담을 수 있다는데 있겠습니다.

 

| 브랜드 컨셉 빌더 BR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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