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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 – 

회사라는 울타리에 속해 있을 때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몇가지 있습니다. 일은 당연하게 알아서 발생하고, 누구나 할 일은 있어야하고, 급여는 당연히 나와야 하는 는 생각입니다. 그런 생각을 너무 당연하게 했던 이유는 회사에 일어나는 일련의 일들을 잘 몰라서기도 하고, 굳이 일부러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 앞에 떨어진 일에만 전념해도 시간이 없는데, 회사의 일과 시간까지 챙기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들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사업을 시작하고 얼마되지 않아 금방 알게됐습니다. 내가 그냥 앉아 있으면 누구도 나를 위해 일을 주지도 않고, 어떤 일도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나 개인이 아니라, 회사를 보고 들어왔던 일들은 나라는 객체로 떨어지고 나서는 받을 수도 없는 환경이 됐습니다. 일은 맡기는 입장에서도 아직 신생 회사에게, 그것도 일인 회사에게 일을 주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변변한 실적이나 포트폴리오도 없으니 믿고 일을 맡길 수 없다는 걸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담당자라고해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그 전에 다녔던 회사의 일은 누군가가 직접 몸으로 부딪치고 발로 뛰어 가져오는 것이거나, 내게 할 일이 있었던 건 들어온 일들을 분배해 준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달 말일 급여가 들어오는 것도 그 돈을 누군가가 만들어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런 기본적인 회사의 상황들을 직장에 속해 있을 때는 왜 잘 공감하지 못했을까 싶습니다.  어느 정도 이해하고 공감은 했어도 아마 절실하게 와 닿지가 않았기 때문이었겠죠.

이렇게 당연하게 생각되던 예전 근무했던 안정적인 회사의 시스템을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 가는 일이 일인 기업을 창업한 내가 생존을 위한 가장 필수요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게 ‘당연’이라는 안전한 내 회사만의 울타리를 만드는 일일겁니다.

일인 다역의 당연함 –

일인 기업은 말단 사원이 하던 일부터 대표님께서 하던 일까지 모두 도맡아 해야합니다. 직장에서는 나에게 주어진 임무만 착실히 해내면 충분했는데, 이제는 혼자서 기획팀 대리였다가 영업팀 과장이었다가 홍보 팀장이었다가 경영지원 대리님이 돼야합니다. 모임 자리에 가면 대표님이 돼야 하구요. 일인다역의 연기자여야합니다. 물론 그 중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 역할을 몇가지 안될 것입니다. 하지만 다 어떻게든 해내야할 일들이죠. 그래야 회사가 돌아가니까요. 그런데 또 신기하게도 이 일 저일을 맡아 하다보면, 또 익숙해지고 또 당연하게 역할을 수행하게됩니다.

저의 주업무인 브랜드 디자인 업무를 하다보면 굉장히 여러가지 분야의 업무들이 교차합니다. 회사에 있을 때는 전략팀, 기획팀, 네이밍팀에서 맡았던 일까지 해야할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요즘 부캐가 유행인데 저에게는 특별히 부캐가 필요없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생각을 SNS의 채널에 남긴적이 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더군요. 특히 저와 같은 일인 기업이나 디자이너, 크리에이터들이 많이 공감해주셨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 기획도 해야하고 (기획자), 카피도 써야하고 (카피라이터), 네이밍도 해야하고 (네이미스트), 시장조사와 분석도 해야하고 (연구원), 프로젝트 공부도 해야하고 (학생), 스토리도 만들어내야하고 (시나리오 작가), 글도 써야하고 (기고가), 그림도 그려내야하고 (화가), 디자인과 개념을 매뉴얼화해야하고 (편집장), 견적서도 써야하고 (경영지원팀장), 회사 평판관리도 신경써야하고 (PR담당자), 인사와 조직관리도 해야하고 (HR담당자), 친절한 상담과 대응도 해야하고 (CS상담원), 내고도 해야하고 (협상가), 영업도 해야하고 (영업이사) 이런 상황이니 디자이너에게 더 이상의 부캐는 무슨 의미일까 싶다. 본캐가 이미 자연스럽게 자아분열된 상태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많은 디자이너들이 딱히 취미가 없고, 쉴 땐 그냥 무중력 상태를 즐기는 것도 이런 이유이지 않을까.’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물론 이 역할을 다 완벽히 해낸다는 건 절대 아닙니다. 일인기업이 혼자니까 처리해야할 일들이 그만큼 많다는 걸 좀 과장해서 표현한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죠. 

이렇게나 많은 일과 역할들을 수행해 나간다는 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만큼 나의 경험치가 늘어난다는 방증일것입니다. 이는 개인의 역량을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올리는 좋은 방법이기도 합니다.

당연한 관계도 없다 –

그렇다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게 회사 일뿐은 아니더군요. 회사라는 울타리에서 나와보니 직장을 통해 나와 관계된 지인들과 지금까지 관계를 맺어 온 친구들의 소중함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나를 인정해주고 아껴주던 사람들이죠.

막 회사를 시작하기 준비하는 공백기에 그 분들을 한사람 한사람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바빠서 보지 못한 것도 있었고, 앞으로 내가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무엇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내심 응원도 말도 듣고 싶었던 것 같구요. 사실 그렇게 한다고 당장 일이 오는 것도 아니지만, 미래에 일을 시작하는 씨앗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 사람이 연락도 없더니 회사 만들었다고 영업하러 왔다고 오해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니 얼굴이 달아오르네요.

하지만 그 시간들을 부끄러운 마음에 그냥 지나쳤다면 지금 너무 후회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얻을 것들이 참 많았거든요. 

지인들과의 만남을 이어갈수록 내 일과 사업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제 스스로가 더 사업의 구체적인 목표와 방향성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런 방법은 제가 큰 고민들이 있거나 진로에 대한 방향을 결정할 때 자주 쓰던 방법입니다. 평소에 연락을 못해 죄송스럽긴했지만, 도움이 될만한 선배들이나 어른을 찾아가 제 고민에 대해 말하는 거죠. 간단한 차나 식사와 함께 혼자만 머리 속으로 고민하던 걸 입밖으로 꺼내 놓으면 일단 마음이 후련합니다. 답답했던 심정이 조금은 나아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말하면서 내 생각도 정리되고 확신이 생긴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경험은 학생 때 공부를 하면서도 많이 느꼈죠. 어떤 어려운 문제를 친구에게 설명을 해보면 내가 이 답을 제대로 아는 지 금방 알게 됩니다. 잘 설명할 수 있게되면 한번 더 깊이 이해하고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내가 앞으로 할 일들에 대해 설명하고, 내 사업이 어떤지에 대해 의견을 물으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같은 질문에도 모두 다른 답이 돌아왔지만, 다양한 관점의 대답들이 내가 하고자 하는 사업을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돌아와서는 대화의 내용을 모으고 종합해 나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정리해갔습니다.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 나를 수년간 알고 있던 가까운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내가 잘할 것 같은 것, 잘 어울릴 것 같은 일을 잘 알고 있었어요.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더라도 반응이 별로인 사업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지적해줬습니다. 순간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어디에도 들을 수 없는 귀중한 조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때 만나 나눴던 대화의 줄기 하나 하나가 떠오르는 걸 보면 인상이 꽤나 깊었나 봅니다. 그 대화들이 기반이 되어 지난 4년동안 크게 흔들리지 않고 방향을 잡고 왔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이 일인 기업을 시작한다면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명제를 먼저 떠올려 보는 걸 권장합니다. 지금은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이지만 앞으로 사업을 시작하게되면 그렇게 되지 않을 것들을 상상해보세요. 그리고 자신이 할 사업을 사람들에게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하는 방안까지 고민하다보면 참 이세상에 당연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걸 다시금 절감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어떤 것이라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습관을 갖는 건 중요합니다. 사업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익숙하고 당연함을 경계하게 만드니까요. 이러한 태도를 유지하고 습관을 들이다 보면 고객들에게도 느껴질 것이고, 이는 기업과 내가 더 가치있게 성장하는 발판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