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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초 명동 거리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싸다고 하는 건물에 화장품 로드숍이 하나씩 들어서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 대한민국 쇼핑1번지였던 거리의 간판들이 미샤, 더페이스샵, 스키푸드, 이니스프리, 토리모리로 채워졌습니다.

명동 안에만 해도 다섯개가 넘는 매장이 있는 곳도 있을 정도였구요. 가는 곳마다 중국과 일본 관광객들뿐 아니라, 국내 소비자들도 가득 찼습니다. 패션 브랜드 위주의 거리가 불과 몇년 사이 뷰티 중심 거리로 변한겁니다. 이런 추세는 다른 도심의 중심가에도 점점 번져갔죠. 착시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로드숍이 정점일 때는 편의점보다 많다는 착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편의점 정도는 아니지만 2015년 1위부터 3위까지 브랜드 매장을 합치면, 지금 동네마다 하나씩 있는 이디야커피 매장수인 3000개 가량이 될 때였으니 과장은 아니네요.

그러나 그런 추세도 2016년을 기점으로 꺽여 가더니 불과 몇년 사이에 로숍들의 매출이 반토막이 났습니다. 그때쯤 일어난 화장품 로드숍 1세대의 원정도박, 뇌물공여 등의 문제는 뷰티 산업의 깨끗한 이미지에는 치명적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2017년에는 사드 문제로 중국 관광객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 버리기도 했습니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많았지만 저는 그 중에서 더페이스샵의 성장성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저가 화장품 시장을 열었던 미샤보다는 1년 뒤에 나왔지만, 브랜드 런칭 초기부터 ‘자연주의’라는 컨셉으로 일관성있게 브랜딩해갔습니다. 1등 브랜드였던 미샤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 전략이었죠. 운 좋게도 한참 불던 웰빙 열풍과 맞아 떨어지면서 시장에 긍정적인 반응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고딕체로 깔끔하고 단순한 인상을 주는 브랜드 로고는 군더더기 없고 가격의 거품도 사라진 화장품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잘 반영했고 그런 인식들이 점점 쌓여갔습니다. 그런 이유들때문인지 화장품 로드숍의 원조격인 ‘미샤’를 밀어내고 금새 시장에서 1위가 됐고, 2009년에는 우리나라 화장품시장의 2위 기업인 LG생활건강에 인수됐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딱 그 시점 이후부터 중저가 화장품 시장이 포화되고 경쟁이 심해지면서 점점 소비자들의 관심이 화장품 로드숍들에서 멀어지게 됐습니다.

그런 위기 의식 때문이었는지 더페이스숍은 LG생활건강에 인수 6년된 시점에 전면적인 리뉴얼을 하게 됩니다. 고딕의 깔끔하고 단정한 모던보이같은 이미지에서 역사와 전통이 느껴지는 브랜드의 헤리티지를 강조한 디자인이었습니다. 브랜드의 상징물은 유럽의 신화를 떠올리게 하는 고전적인 상징물과 여인의 얼굴(Face)를 구체적으로 표현했습니다.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는 낯선 해외 브랜드처럼 느껴지고, 원래 알던 소비자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혁신적인 변화의 인상을 줬습니다. 이름만 같았지 거의 새로 태어나는 느낌의 변화였습니다.

기존 로고가 표방하는 ‘Natural Story’가 깔끔하고 단정한 느낌이었다면, 리뉴얼한 ‘Natural Story’는 더 고전적이고 스토리가 담긴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 변화까지는 좋았는데, 그 이후가 문제였습니다. 당연히 리뉴얼된 디자인으로 매장도 바뀔 줄 알았는데, 명동의 플래그쉽 매장과 몇 개의 대표 매장에만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나머지는 매장들은 ‘Nature Collection’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변해갔죠. 갑작스러운 변화가 부담스러웠는지 ‘Nature Collection’이라는 긴 이름에 ‘by THE FACE SHOP’이라는 말을 아래 덧붙입니다. 이제는 단순한 ‘Shop’이 아니라, LG생활건강의 다양한 화장품 라인 브랜드뿐아니라 생활관련 용품들까지도 함께 구매할 수 있는 ‘Collection’이 되겠다는 생각에서 만든 온오프라인 통합 브랜드가 새롭게 탄생입니다. 

‘Nature Collection’이라는 이름은 자연주의를 표방한다는 의미에서는 좋은데, 그 안에 있는 다양한 LG생활건강의 화장품 라인브랜드까지를 아우르는 이름은 아닙니다. 특히 예화담(한방화장품), CNP차앤박(더마화장품)같은 성격의 제품들과의 조합은 어색해 보입니다. 또한 온라인 시장을 염두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무 모양의 복잡한 심벌이 과연 디지털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잘 기능할지는 정말 의문이었습니다. 화장품 패키지 어딘가에 붙는 라벨로는 좋은데, 온라인숍과는 이질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어쨌든 더페이스숍이 이런 상황이 되니 매장이라는 공간의 성격까지 가졌던 THE FACE ‘SHOP’이 더 이상  ‘SHOP’의 개념이 아니게 됐습니다. 브랜드의 범위가 더 이상 공간의 개념까지 가져가지 못하고 축소되어 LG생활건강에서 나오는 중저가 화장품 라인 제품브랜드가 된 겁니다. 이는 2000년 초 런칭 초기 그대로 따라했다고 말이 많았던 영국 전통의 화장품 브랜드인 THE BODY SHOP과는 다른 행보입니다. 바디숍은 THE BODY ‘SHOP’이라는 브랜드 네임처럼 오프라인 ‘SHOP’의 경험을 여전히 중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더페이스’숍’은 로드’숍’으로 시작했는데 ‘숍’이 점점 사라지고 ‘컬렉션’으로 바뀐 이유는 명확해보입니다.

첫번째는 이제 더 이상 오프라인숍에서 화장품을 사는 사람이 줄었기 때문이겠죠. ‘로드숍’에서 ‘온라인숍’으로 급격하게 이동했습니다. 코로나 19의 영향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화장품로드숍 뿐만 아니라, 뷰티와 헬스관련된 제품들까지 확장한 편집숍들 또한 올리브영을 제외하면 고전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오프라인 매장은 없지만 매력적인 중저가의 컨셉을 가진 화장품들은 온라인숍에서 고객들에게 손짓을 하고 있습니다.

두번째는 중저가 화장품들 특히 로드숍들의 포화상태로 인해 출혈 경쟁이 계속되고 있는 요인입니다. 중저가 화장품의 이윤이 얼마일진 모르겠지만, 대부분 유명 연예인을 내세우고 막대한 광고비를 투입하는 전략이 더이상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애초에 가격 거품을 뺀 저가 화장품 컨셉으로 생겨난 이 카테고리 산업이 이런 막대한 홍보 자금이 들어갔을 때 과연 가격 경쟁력이 생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이런 고민들은 LG생활건강 뿐아니라 1위 기업인 아모레퍼시픽에서도 하고 있습니다. 결국 앞으로의 싸움은 ‘로드숍’이 아니라 ‘온라인숍’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겠죠.

이러한 브랜드의 역할 변화는 당연한 결과라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쉬움이 있는 부분은 THE FACE SHOP의 브랜드가 무척이나 어정쩡하게 돼버린 것입니다. ‘Shop’이 붙은 이름과는 다르게 더 이상 THE FACE SHOP이라는 로드숍도 온라인숍도 없기 때문입니다. 독립적으로 계속 유지해나가기는 쉽지 않겠지만, 이 어려움을 꿋꿋하게 딛고 일어서서 수백년이 넘는 화장품 브랜드가 되는 길은 없었던 걸까요.

더페이스숍의 인상적인 브랜드 리뉴얼을 보면서 LG생활건강에서 나오는 하나의 브랜드가 아니라, 모기업에 전혀 영향을 받지도 않고 연상도 되지 않는 더욱 독립적인 화장품 브랜드의 탄생을 그렸던 저로서는 무척 아쉬운 부분이긴 합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면서도 쉽지 않다고 생각한 건, 바디숍마저도 2006년 로레알에 매각된 이후 매출 저조로로 인해 십년만에 브라질 회사인 나투라에 매각됐다는 사실입니다. 매장까지 겸한 화장품 브랜드가 성공하기는 정말 쉽지 않는 시대가 됐습니다. 바디숍도 이런 고민에서인지 제품라인 전체를 2023년까지 비건인증 화장품을 100%로 전화하고 리필 스테이션을 마련하는 등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THE FACE SHOP 또한 THE BODY SHOP처럼 이제는 이미 온라인 시장에 빼앗긴 중저가 화장품이라는 포지셔닝을 버리고, 더 윗단계의 새로운 중고가 화장품 라인으로 변화를 하면 어떨까요? 

이런 생각의 근간에는 어느 순간 화장품 시장이라는 게 애초에 합리와는 거리가 있는 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화장품을 싸기 때문에 바르는 게 아니더군요. 비싸더라도 확실한 효과가 보장이 안되더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 때문에 화장품을 바릅니다. 이런 원초적인 사용 요인때문인지 화장품은 일반적인 비누나 샴푸같은 제품들보다는 한단계 위의 고관여가 생깁니다. 관여도가 올라가면 가격은 자연히 올라가지만, 보통 가격 민감도는 떨어지기 마련이죠. 저는 이런 소비자들의 화장품 소비 패턴때문에 ‘저가’ 화장품이라는 게 과연 소비자들에게 지속적인 매력이 될지 항상 의문이었습니다.

물론 지난 10여년간은 중저가 화장품 로드숍들은 ‘거품을 뺀’ 가격이라는 전략으로 설득력 있게 고객들에게 어필했고 신화적인 매출의 성과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 때와는 많이 다릅니다. 고객들의 소비 수준과 경제적 수준도 그 때보다는 훨씬 올라갔습니다. 온라인과 홈쇼핑을 통해 다양하고 매력적인 브랜드들을 많이 체험한 경험이 풍부해졌습니다. 더이상 예전처럼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승부를 걸 수 없는 이유입니다. 가격 경쟁력마저 이미 수많은 온라인숍들에게 빼앗긴 것도 사실이구요.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라도 저는 더페이스숍에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가 화장품 브랜드가 중고가의 화장품이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일겁니다. 브랜드 스스로도 그렇고, 구매하는 소비자의 인식 속에서도 그렇겠죠. 꽤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좋은 브랜드가 일순간에 만들어질 수가 있나요. 모두 그런 난관을 넘어서고 견뎌냈을 때 좋은 브랜드로 인정받습니다.

THE FACE SHOP이 한 단계 올라간 화장품 브랜드가 된다면 매장 경험도 달라야 합니다. 진열장처럼 사기 좋게 놓인 마트의 매대가 아니라, 좋은 제품을 경험하고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아름다움이 놓인 진열장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품이나 성분, 더욱 차별화된 품질은 당연한 조건이겠습니다. 어렵겠지만 이 방법이 저는 THE FACE SHOP 더페이스숍에서 SHOP숍을 버리지 않고 유지해가면서 온오프에서 특별한 경험을 선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브랜드 컨셉 빌더 BRI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