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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세라핌을 보고 런던올림픽이 떠올랐던 이유 >

최근 브랜딩 사례 중 보자마자 ‘파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인상적인 비주얼의 브랜딩이 있었습니다. 바로 르세라핌 (LE SSERAFIM)이라는 걸그룹의 아이덴티티 디자인입니다. 사실 보고도 읽지 못하고 그 뜻은 짐작도 할 수 없는 이름이었습니다. 하지만 로고의 파격적이고 신선한 비주얼이 한눈에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좋은 의미로 파괴적이기까지 한 이 로고는 기존의 여자 아이돌의 아이덴티티와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그 이미지의 잔상은 하나의 음처럼 떨리며 우리의 몸과 눈으로 전해집니다. 평면이지만 촉각과 시각을 동시에 자극합니다. 

문장 안 단어의 질서를 파괴하다

알고 보니 LE SSERAFIM은 IM FEARLESS라는 문장의 단어들을 해체하고 재배열해 다른 뜻을 가진 단어로 바꾸는 애너그램의 방식을 차용했다고 합니다. ‘르세라핌’ 참 특이한 이름이죠.

‘ㄹ’,’ㅅ’,’ㄹ’,ㅍ’이 첫 자음들이 모두 혀끝과 입술, 구강의 앞쪽에서 발음이 되어 뒤쪽 목에서 울리는 음들과는 달리 가볍고 세련된 느낌을 줍니다. 특히 가장 부드러운 발음을 가진 ‘ㄹ’이 두 개나 있어 파격적인 비주얼, 언뜻 보면 남성 아이돌 그룹 같은 느낌을 상쇄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의 ‘핌’은 피어나고, 피어오르는 듯한 기분을 주기도 합니다.

의미적인 측면에 있어서는 두려움 없이 꿈을 향해 나아가자는 소녀들의 품은 열망과 포부를 문자 안에 숨은 코드로 담아내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뭔가 비밀스럽고 신비주의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룹의 이미지를 참 적절하고 절묘한 방식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파격과 비대칭의 조합으로

 직각의 도형이 불규칙하게 겹쳐 만들어내는 조형이 저는 마치 흰색의 거친 날갯짓처럼 보였습니다. 블러 효과를 통해 2D 평면 이미지이지만 동적인 움직임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라핌(Seraphim)이라는 발음의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높은 단계의 천사를 뜻한다고 합니다. 그 천사가 인간 앞에 나타날 때 했던 말이 ‘두려워말라’였다고 하는데 IM FEARLESS의 의미를 내포한 이름을 가진 ‘르세라핌’은 곧 그 천사의 말을 전하는 전령이 아닐까 싶습니다. 천사의 날갯짓 치고는 꽤나 거칠고 개성이 있는 상태입니다. 르세라핌이라는 천사는 그저 예쁘고 착한 정형화된 천사가 아니라, 개성 강하고 자기주장도 강한 천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인 중간획의 길이보다 짧고 위치가 약간 높은 ‘E’와 ’F‘ 형태를 저는 잔잔하지만 의미 있는 파격으로 보이더군요. 그런 작지만 개성 있는 파격이 날갯짓의 위아래를 받쳐주고 있어 전체적으로 훨씬 더 완성도 있는 로고를 만들어내고 있었습니다.

불안과 두려움 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빛 –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건 뭘까요? 저는 ‘잘 모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두려움은 대상을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잘 아는 것들은 사실 큰 두려움이 없죠. 사람도 언어도 지식도 그렇습니다. 모든 두려움은 알 수 없고, 보이지 않기 때문에 두렵죠. 또한 보이지 않는 미래도, 존재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도 두렵습니다. 하지만 이 걸 넘어서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죠. 이런 두려움을 격파해 나갈 때 꼭 필요한 게 ‘파격’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르세라핌의 디자인에는 그런 그들의 자세가 보입니다. 기존의 생각을 벗어나고, 기존의 나를 뛰어넘고, 원래 가지고 있던 틀을 깨트려 비상하는 날개로, 찬란한 빛으로 연결되는 상징성이 보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그 많은 걸그룹 가운데서도 유독 눈에 띄는 아이덴티티 만들어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르세라핌을 보고 런던올림픽이 떠올랐던 이유 –

르세라핌의 디자인을 보고 저는 2012년에 열렸던 런던올림픽이 떠올랐습니다. 이 올림픽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일었던 올림픽 엠블럼 디자인으로도 유명하죠.

핫핑크와 일렉트릭 블루의 색상이 너무 자극적이라는 비판부터 너무 현란하고  심지어 성행위를 연상한다는 말까지. 거기에 더해 이란은 이스라엘을 지칭하는 ‘Zion’을 형상화한다고 불참을 선언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BBC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89%가 반대했다고 합니다.

이렇듯 과감한 형태와 낯선 감성은 익숙함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파격으로 다가옵니다. 그런데 그 파격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파격에는 항상 저항과 많은 논란이 따르게 마련이죠. 지금 런던올림픽의 엠블럼을 보는 여러분의 시각은 어떠신가요?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의 디자인네요.

파격에는 항상 반격이 뒤따른다 –

런던 올림픽의 엠블럼은 지금 시점의 감각으로도 뒤떨어 보이지 않습니다. 끝나고 나서 소용없는 일이긴 하겠지만 올림픽이 끝나고 5년이 지난 뒤에야 우호적으로 여론이 돌아섰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10주년을 기념하는 엠블럼도 그 엠블럼을 따라 만들었더군요.

 ‘우리는 대중적 인기를 얻기보다 충격을 주길 원했다’는 이 프로젝트를 지휘한 울프 올린스 대표 칼 하이젤먼의 인터뷰는 이러한 논란을 예상이나 한 듯합니다.

파격적인 로고로 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그라드는 시기에 전 세계인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전략이 제대로 통한 예라고 하겠습니다.

런던 올림픽의 엠블럼에 담긴 파격적 생각들 –

제가 보기에 런던 엠블럼이 좋았던 점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현대적이고 역동적이며 활력이 넘치는 이미지는 기존 올림픽들과는 완전하게 차별화된 인식을 심어 줄 수 있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마치 그라피티를 연상시키는 이 감각적인 로고는 점점 노쇄해가는 올림픽이라는 축제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습니다.

두 번째는 세계 평화나 런던이 주제가 아니라 2012라는 년도를 메인으로 가져오는 아이디어를 과감히 채택했다는 점입니다. 표현하는 소재 자체가 이전의 올림픽 로고들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의 디자인이었습니다. 

이는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의 문제입니다. 어떤 메시지를 고객들에게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르세라핌이나 런던올림픽처럼 충격과 파격의 키워드를, 그냥 일반적인 걸그룹으로 평범한 올림픽의 메시지 신호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브랜딩이란 단 하나의 단어를 고객들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넣는 일입니다. 라세라핌과 런던올림픽이 ‘파격’이라는 키워드를 우리의 머릿속에 확실하게 각인한 것처럼 말이죠.

모두가 폼나는 파격을 꿈꿉니다 –

하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도전이죠. 감히 시도조차 꿈꾸지 못할 때가 많은 현실입니다. 그럴 땐 이어폰을 끼고 르세라핌을 들으려고 합니다. 런던올림픽의 환호성을 떠올려 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내가 꿈꾸는 파격을 위해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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