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예전 사회 초년 시절에 친구와 함께 방을 함께 쓴 적이 있었다. 좁은 방에 살다보니 불편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20년 넘게 각자 생활패턴으로 살다가 갑자기 서로에게 맞추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특히 내가 가장 불만인 건 식사 후 설겆이하는 패턴이었다. 내 경우에는 밥도 좀 여유있게 먹고, 먹고 나서는 소화도 시키는 시간을 가지는 편인데 친구는 달랐다. 밥을 먹자마자 주방으로 달려가 바로 설겆이를 했다. 그런 친구에게 혀를 차며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 넌 왜 이렇게 여유와 낭만이 없는거냐? 밥을 먹고 소화도 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그렇게 설겆이를 하고 싶니?’라고 비꼬듯 말했었다.

바쁜 출근 시간이면 모르겠지만, 주말에 여유있는 시간에도 그러는 게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좀 쌓아 뒀다가 하면 두번 할 걸 한번만 하면 얼마나 좋은가. 커피도 마시면서 소화도 시키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런 내 바람과는 달리 친구는 식사가 끝나시도 무섭게 기어코 주방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 당시에는 정말 이해가 안갔는데 나중에 들어 보니 조금 이해가 갔다. 친구는 설겆이할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게 아니라 설겆이 이후의 여유를 더 편안하게 즐기고 싶던 것이었다.

하긴 내 방식과 친구의 방식은 장단점이 분명하다. 내 방식은 당장 꿀맛같은 여유를 갖기에는 좋다. 문제는 정말 하기 싫어질 때도 많다는 거다. 집안 일이 즐거울 리 없으니까. 한번 밀리기라도하면 걷잡을 수 없이 쌓이고 그러다보면 처음 잠깐하면 될일이 상당한 힘을 쏟아야할 일로 변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 1인 기업을 운영하고 보니 설겆이는 밥먹고 바로해야한다는 그 친구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고 있다. 소화는 설겆이가 끝난 뒤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오히려 싱크대 위에 가득한 설겆이가 신경쓰여 소화가 잘 안 될 경우가 더 많다.

설겆이를 예로 들어 좀 그렇지만, 1인 기업은 해야할 일들을 그 때 그 때 바로 바로 처리하는 습관을 들이는 게 중요하다. 일이 늘어지고 쌓이다보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 앞에 닥친 일들은 왠만하면 미루지 말아야한다. 최단 시간에 적절한 답을 내리고 공을 고객에게 던지는 게 바람직하다. 행여 부족한 답이라고 해도 빠른 시간에 방향을 확인받고 더 좋게 수정해 나가는 방법이 현명하다.

일을 그 때 그 때 해 두지 않아서 쌓였다면 어느새 혼자 처리하기 힘들 때가 온다. 그럴 땐 절대 그 일들을 엉덩이 아래 깔고 있지 말아야한다. 비용이 들 더라도 당장 외주 인력으로 시간을 줄이는 게 오히려 합리적인 방법이다. 외주 인력들도 일정이 있으니 그런 일이 발생하기 전에 미리 미리 일을 분배하는 걸 습관화해야한다. 내가 맡는 일 한두개를 붙잡고 거기에만 몇주간 길게는 몇달을 몰입할 수 있었던 조직 내에서의 시절과는 달라야한다.

1인 기업에게는 속도가 생명이다. 속도를 보고 일을 맡기는 고객들도 많다. 다이렉트로 그 때 그 때 바로 바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러 사람 거칠 것 없이 단일화된 소통 창구가 있어 일의 속도를 높여준다. 조직을 갖춘 회사에 비하면 이런 점은 장점으로 작용한다.

빠르고 즉각적인 대응이 중요한 이유는 그 게 상대의 시간을 아껴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상대의 답이 생각만큼 빠르지 않을 때 그걸 기다리는 심리적 비용은 무시할 수 없다. 특히 여러가지 일정들이 한꺼번에 겹쳐 있을 땐 더 그렇다. 그 일정 하나를 기다리다가 다른 일정까지 꼬일 때가 많다. 그런데 일을 맡긴 회사가 발빠른 피드백과 함께 미리 앞으로의 일정까지 꼼꼼하게 알려준다면 얼마나 고마울까. 미리 예상하고 일정을 잡을 수가 있으니 심리적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예상할 수 없는 기다림만큼 불안하고 불편한 상황은 없다.

조직의 규모가 클수록 의사 결정 과정이 복잡해질수록 이런 기다림의 과정 때문에 늘어나는 불편은 더 늘어난다. 상대방이 고마워 할 수 있게 빠르게 속도감있는 대응하면 업무 효율도 올라가고 개인의 시간도 아낄 수 있다.

이제는 나 또한 예전 그 친구처럼 식사 후에 바로 바로 설겆이를 하고 있다. 당장은 여유를 가지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몇 일 앞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일정을 가진 1인 기업 입장에서는 눈 앞에 놓인 일들은 바로 바로 치우는 게 좋기 때문이다.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의 날. 설날 아침에 눈이 내렸다. 설의 여유로움도 좋지만, 당장은 눈 앞에 쌓인 눈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심했다가는 갑자기 기온이 떨어져 빙판이 되기 딱 좋은 상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