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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한끼는 떡볶이를 먹을만큼 좋아한다. 아내는 세끼 모두 떡볶이를 먹어도 될만큼 좋아하는데, 어느새 나도 그 쫄깃하고 매운 맛에 매료 돼버렸다.

그런데 신기한 건 할때마다 거의 맛이 완벽하게 비슷하다. 똑같은 순서, 똑같은 재료, 똑같은 양, 똑같은 화력의 인풋은 매번 같은 맛의 아웃풋을 만들어 내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생각없이 느낌대로만 똑같은 방식으로 조리를 하다보니 당연히 그런 결과값이 나왔을거라 예상할 수 있었다.

안되겠다 싶어 어느 날엔 작정을 하고 의도적으로 요리의 재료를 바꿔봤다. 쌀떡을 밀떡으로 바꿔보고, 고추장보다 간장을 비율을 더 높이는 시도를 했다. 그런데 재료의 변화만으로는 맛이 획기적으로 변하진 않았다.

그렇다면 재료가 아니라 다른 요소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조리의 방식과 순서를 변화시켜봤다. 제일 나중에 넣던 떡을 제일 먼저 기름으로 볶아 고소한 맛을 올리고 양파도 미리 넣어 긴 시간 조리함으로써 단맛을 올려봤다. 분명 이전과 똑같은 재료였는데 맛은 많이 변했다. 약간의 불맛이 나는 떡과 부담스럽지 않는 단맛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떡볶이가 만들어졌다.

원래 가진 재료도 중요하지만 재료를 활용하는 방식이나 조리하는 순서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걸 그 때 알게됐다. 같은 계란과 기름과 불을 가지고도 환상적인 맛의 계란 후라이를 내놓는 백종원 선생을 보면서도 그런 생각에 더욱 힘을 얻었다.

디자인이라는 요리도 마찬가지다. 똑 같은 형태와 색, 질감같은 재료를 가지고도 디자이너들마다의 요리법과 순서로 완전히 각기 다른 결과물을 완성한다. 주어진 재료들은 비슷한데 이렇게나 다양한 디자인의 맛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

단지 디자인뿐일까. 어떤 일이든 하든 재료는 다 비슷하다. 물론 월등한 재료의 퀄리티의 상품들은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결국 일의 승부처는 재료가 아니라, 같은 재료를 다루는 일의 방식과 순서에서 판가름 난다.

그러하니 쉽게 바꿀 수 없는 소재나 근본 재료들을 바꿔 볼 게 아니라, 주어진 재료와 재능을 가지고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해낼 것인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혼자 일하다보면 내가 가진 재료 즉 재능에 대한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매번 프로젝트를 할 때마다 재료의 미숙함과 부족함때문에 아쉽다.

자주 ‘이런 재료가 더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런데 그런 생각에 집착해서는 절대 프로젝트에 도움이 되질 않는다. 대신 주어진 재료안에서 어떻게든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궁리를 해야한다. 재료의 변화가 아니라, 일의 방식과 순서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가야한다.

좋은 재료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한 걸 탓할 시간에 내가 가진 재료을 어떻게 하면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을 할지 고민해야한다. 새롭게 연결하고 조화롭게 섞어내 최상의 요리를 만들어낼지 고민하는 게 개인이나 회사의 성장에도 훨씬 유리한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