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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생활을 끝내고 내 사업을 시작한지 오늘로 정확히 5년이 흘렀습니다. 페이스북에서는 5년 전 오늘 처음 ‘사업자등록증’이란 걸 받아보며 혼자서 뿌듯해했던 포스팅 알람이 뜨고 있습니다.

직장에서의 5년은 정말 길게 느껴졌는데, 혼자서 사업을 시작하고서의 5년은 정말 짧습니다. 하는 일도, 해야할 일도, 해보고 싶은 일도 많았던 좌충우돌의 시간들이 하나의 긴 트랙처럼 머리 속에 들어옵니다. 구불 구불 돌아 돌아 나가기도하고, 속도감 있게 뛰어 가기도하고, 더 높은 곳을 보면 한단계 한단계 올라섰던 기억도 떠오릅니다. 이 모든 경험들로 채운 5년의 경험은 앞으로도 사업을 하는데 있어 큰 자산이 될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도 사실 크게 다르진 않지만 처음에는 사업자등록증만 있지, 프리랜서나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르다면 프리랜서보단 약간의 세금을 더 내는 정도였죠. 굳이 내지않아도 될 사업자를 시작하자마자 낸 건 그래도 잘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프리랜서처럼 일을 받아서 하지만 그래도 마음 속엔 항상 ‘일’이 아니라,  ‘사업’을 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운영해왔습니다. 사업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일정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짜임새 있게 지속적으로 경영함. 또는 그 일.’이라고 합니다. 혼자서 일하더라도 내 회사를 나 자신을 경영한다고 생각하면 내가 뭔가 더 크고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기분을 줬습니다. 그 기분은 항상 주체적이고 자주적인 태도를 견지할 수 있는 힘이 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각 분야별로 함께하는 파트너들이 생기면서 혼자지만 또 여러명이 함께 일하는 시스템의 회사로 변해가고 있는 중입니다. 앞으로도 프로젝트에 따라 우리 회사가 누군가를 고용하기도 하기도 하고 반대로 다른 회사가  나도 고용하기도 하는 작지만 빠르고 유연한 조직의 회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저희 회사의 이름인 ‘브릭’처럼 각 분야의 최고의 인력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쌓아가고 목표를 이뤄가는 회사의 모습을 점점 갖춰 나가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제가 애정하는 작가 분께서는 제 글에는 ‘레이어‘가 많이 있다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내 경험과 생각의 층이 글에 보이신다고 하더군요. 사실 스스로는 잘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는데 그런 말을 해주셔서 궁금했습니다. 그렇게 느끼게한 요인들을요. 결론은 지금까지 쌓였던 제 경험의 층들이 지금의 디자인과 콘텐츠를 만들고 있는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경험들과 생각들이 지층처럼쌓여 이제서야 쓸모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심 뿌듯합니다. 그 동안 쌓아 온 것들이 전부 도움을 주고 있으니까요.

5년 전 사업을 시작하기 전에는 저는 3곳의 회사를 다녔습니다. 세 곳 모두 브랜드 컨설팅과 디자인을 하는 전문회사였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12년 동안 했던 직장에서의 경험은 지금에 와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내 머리 속 어딘가에 쌓여있다가 지금 제가 쓰는 콘텐츠로 일하는 방식으로 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직장에서는 주로 대기업, 중견기업이나 공기관의 브랜딩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 때 제가 주도적으로 했던 프로젝트는 샘표 순작, 호반건설, 한우리열린교육, 대원제약, 한국야쿠르트 브이푸드 비타민, 떡볶이 세계화 프로젝트, 우리술인증마크, 한국관광공사 코리아스테이, LH 한국토지주택공사, EX 한국도로공사, 안전보건공단, SL 에스엘, 계명대학교, 두산 양생주, 청주시립미술관, 한림의료기 등의 프로젝트들입니다.

알라딘, 호암재단, 곤지암수목원, 아브뉴프랑스, NH농협, 헌법재판소, 한국은행, YTN, 채널 A, Business&,  LB 인베스트먼트, 왕뚜껑, 티클라우드, 인디에프, 식약청, 보건복지부, 한국건설기술연구원,국토연구원 등은 함께하거나 옆에서 도움을 줬던 일들입니다.

디자인파크(2006~2013)에서 7년크레이피쉬(2004~2006)에서 2년이노파트너스(2013~2017)에서 3년, 그리고 BRIK(2017 ~현재)에서 5년 동안 했던 프로젝트를 다시 살펴봤습니다. 거의 300개 정도의 브랜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참여해왔습니다. 프로젝트 횟수와 숫자보다는 할 때마다 산업별 분야별로 조금씩 공부했던 지식들과 생각들입니다. 여러 산업 분야와 시장을 찾아보고 분석했던 공통된 내용들이 쌓이고 연결되면서 저만의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기반이 됐습니다.

이런 배경 지식의 완벽한 습득만이 반드시 브랜딩 프로젝트를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건 아니지만, 비즈니스라는 세계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무엇보다 그렇게 시장 동향을 분석하고 기업의 정체성과 본질을 파악하는 습관이 내 몸과 생활 속에 베인 건 가장 큰 자산입니다. 이러한 습관의 과정과 경험의 레이어가 쌓이고 쌓여 점점 더 나은 생각과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저는 디자인 자체보다 저는 디자인 하기 전에 기업이나 브랜드를 파악하고 진단하고 예상해보는 것에 더 재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막상 디자인을 하면 너무 힘들고 어렵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전에 자료를 이해하고 찾고 분석하는 데는 어렵거나 지루하지 않았으니까요.

이런 느낌은 지난 5년간 홀로 독립을 해서 1인 기업을 운영해오면서 더 확실해졌습니다.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뭘 더 잘하는지, 더 쉽고 재밌게 할 수 있는지를 더욱 명확히 알게됐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저는 디자인이라는 행위 자체보다는 디자인을 하기 전 까지의 과정에 관심이 많고 그 걸 즐기고 있었습니다.

디자인으로 구현되기 전에 이 시장의 상황은 어떻고, 우리 브랜드의 위치는 어디에 있고, 그렇다면 앞으로 어디로 가야할지 브랜드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제안하는 도구로써의 디자인에 재미를 느꼈던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담아 브랜드 스토리로 풀어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이유는 사실 제 개인적인 선호도 있었지만 고객사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5년동안 저의 회사에 의뢰해오는 대부분의 기업이나 브랜드들은 작은 소규모의 기업들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회사들이 자신들의 이야기 하나없이, 있더라도 너무나 빈약한 상태에서 디자인을 의뢰해왔습니다. 브랜드의 이야기가 콘텐츠가 하나 없는데, 어떻게 그걸 디자인할 수 있을까요? 디자인할 대상이 없으니 제가 그걸 만들어내야할 경우가 많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들 브랜드의 문제는 사실 로고가 아니라 브랜드의 비전이나 철학, 가치 등을 담은 브랜드만의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그럴듯한 디자인으로 치장해봤자 소용없는 일인데 말이죠. 심지어 비즈니스 모델마저도 애매모호하고 시장에서 잘 통할 것 같지 않은 경우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5년간 이런 상황을 겪고나니 자연스럽게 브랜드 ‘디자인’에서 ‘스토리’로 생각의 무게가 옮겨가더군요. 정말 필요한 건 브랜드 로고가 아니라, 브랜드만의 언어나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작년부터 생각한 서비스가 ‘브랜드 스토리 북’입니다. 쉽게 말해 브랜드 소개서 정도가 되겠습니다. 브랜드 여러가지 내용들 즉 브랜드의 철학, 비전, 가치, 차별성, 특징의 구슬을 하나의 스토리라는 목걸이로 엮어낸 소책자입니다. 온라인 시대에는 맞게 모바일에서도 웹상에서도 편하게 읽어낼 수 있는 .pdf로 만들어 보기에도 활용하기도 좋습니다. 분량은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꼭 필요한 내용만 10페이지 정도로 정리해주는 것입니다. 이것만 있으면 브랜드 브로셔를 만들 때도, 홈페이지에 회사 소개를 넣을 때도, 각종 디자인 방향이나 목표를 정할 때도 유용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5주년을 기점으로 ‘브랜드 스토리 북’ 서비스를 런칭하며, 그 동안 브랜드 디자인 오퍼 (Brand design offer)로서 해왔던 역할에서 더욱 확장해 이제는 브랜드 스토리 빌더 ( brand story builder )가 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브랜드가 성장하기 위한 가장 기본을 브랜드 언어로 구축하는 회사가 되고자 합니다.

앞으로의 5년이 저 또한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잘 지켜봐주시고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브릭. 우현수 올림.